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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 주일설교 묵상]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
본문선택 마태복음  4장  1절 - 2절
작성자 yiss 작성일 2008-04-07 오전 8:30:48 조회 2377 건 추천 0   
내용


[하용조 목사 주일설교 묵상] 마태복음 4장 1~2절 예수가 당한 첫번째 시험(1) [1987년 11월 29일]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사람 통찰하기]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이라고 우리가 보통 말하는데 거기에 보면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주기도문에 많은 간구가 있지만 특별히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두 번씩이나 강조한 것은 바로 여기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류의 조상이 타락한 이후에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당한 문제는 사탄의 시험이었습니다.
실제로 지상의 어떤 인간도 사탄의 이 유혹에서 제외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뿐만 아니라 마귀가 뿌려놓은 이 악에 시달림을 받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나 나나 예외는 아닙니다. 한 사람도 예외는 없습니다.

  [전환하기]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은 우리 주님께서도 그의 공생애 구원사역을 시작하려는 바로 그 때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세례를 받으시는 일이었고,
그리고 바로 세례를 받고 나신 후에 이 인류가 부딪치는 아무 누구도 예외가 없는 마귀의 시험의 문제를 예수님도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고 악에 빠지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어떻게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수 있느냐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대답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이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대신 세례를 받아주신 것처럼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것은 예수님이 약하시거나 예수님이 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모든 우리 인류들을 위해서,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시험을 받아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 엄청난 도전과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는데 마태가 특별히 이것을 기록한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의 왕이요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데 이 세력을 꺾고 진실로 우주의 왕이요 인류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기록을 특별히 쓴 목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 목적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승리하신 인류의 왕으로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이 유혹은 아담과 이브가 겪었던
유혹이요.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유혹의 똑같은 패턴인데 우리가 현실적으로 이 지상에서 신앙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이 유혹을, 이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그 방법을 제시해줌으로써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이 시험에서 이러한 종류의 시험에서 능히 이길 수 있는
비결을 보여주시는데 두 번째 목적이 있습니다.

  [전환하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러면 겪으신 이 마귀의 사탄의 시험은 어떤 것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이 시험을 어떻게 승리하셨는가를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설교를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죄의 문제이며 사탄의 문제이며 죄의식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1절과 2절만 서론으로 공부를 하겠고 계속해서 이 예수님의 시험문제를 좀 깊이 다루려고 합니다.
먼저 1절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1절과 2절의 말씀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세례를 받으시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 4장 1절에 보면은 그때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셨다는 말이 있다.
                     여기 중요한 시제가 또 하나 나온다. "그 때"라는 시간을 가르쳐 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도 3장 13절에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히브리서에는 '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오늘 날'이라는 말도 많이 쓰고 있다.

성경은 특별히 '때'에 대해서 민감하다.
주님이 오실 때가 언제냐고 물었을 때 너희 알 바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너희들이 이제 곧 심판의 때가 온 줄 알라고 말했다.
너희들이 세상의 모든 사시사철의 때는 알면서도 주님의 때는 왜 모르느냐고 말씀한 적이 있다.

 [지난 주 설교 복습]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물세례를 요한에 의해서 요단강에서 겸손하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우리는 지난주에 배웠습니다.

첫째 하늘이 열렸다고 말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세례란 회개의 열매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세례를 받는 것이 순서입니다.
세례를 받았을 때 이 예수님에게는 하늘이 열리는 사건이 이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에게 임했습니다. 성령충만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전환하기]
이 음성을 듣고 난 그 때에, 세례를 받고 난 그 때에, 세례를 받고 나서 하늘의 엄청난 비밀을 육신의 몸을 입은 예수께서 본 그 때에, 이 때에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몰고 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여기 우리나라 성경에 보면은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러 광야로 가사"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을 좀더 쉽게 얘기하면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간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간 것이다.
                     시험은 마귀에 의해서 받았지 만은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가신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똑같이 이 예수의 시험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가복음에는 좀더 강렬하게 1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성령이 인도했다고 말했지 만은 마가복음에서는 몰아냈다고 말했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우리는 이 단순한 한 말씀 속에서 세례와 광야라고 하는 두 사건 속에서 배우는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큰 감격이 있고 나면 반드시 고난과 시험이 온다고 하는 진리입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승리 뒤에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고 은혜받고 난 다음에는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이것은 나의 인생사에서도 배우는 진리임을 알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예수님께서 성령을 충만히 받으시고, 하늘의 문이 열리시고, 하늘에서 음성을 듣는 영적으로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기막힌 이 신령한 경험을
                     하고 난 바로 직후에 성령께서 그를 정반대의 현상으로 광야로 그를 몰고 갔다고 하는 사실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나의 영적생활에 있어서도 똑같은 것들을 많이 겪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 통찰하기]
특별히 최근에 은혜받은 사람들은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저께 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신 분은 조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늘의 높은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는 땅에 비참한 사건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이 사건을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도 경험한다.
아브라함이 1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지 만은 응답이 없었다.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반항하기 시작한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약속을 보여주십시오.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이 아무리 얘기하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는다.
"하늘의 별을 보라. 바다의 모래알을 보라. 네 자손이 이렇게 많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위로했건만 아브라함은 믿지를 않는다.
이 때 아브라함이 증거를 보여달라고 떼를 쓴다. 밤이 맞도록 짐승을 두 짝을 놓고 거기서 기다린다.
이 때 밤에 불이 내려와서 이 짐승사이로 불이 지나간다.
이것이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성령체험이다. 아브라함의 영적인 높은 체험이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그 날 밤에 아브라함은 밤이 맞도록 하나님과 대결에서 이 귀한 체험을 얻고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니까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사라입니다. 애기 낳지 못하는 사라. 신경질로 가득 찬 사라. 남편은 산에 가서 은혜받고 왔지 만은 은혜받고 바로 땅으로
돌아오니까 애기를 낳지 못하는 부인의 신경질로 꽉 찬 발언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 종이나 데리고 가서 애기나 나시오"
이것이 사라의 얘기입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이것은 현실임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영적으로 높은 경험을 하게 되면은 그 다음 순간에 비참한 땅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여기서 시험을 들고, 여기서 넘어지고, 여기서 좌절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 통찰하기]
예수님께서는 이 세례를 통한 신령한 경험 뒤에 성령께서 광야로 몰고 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저희 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연극을 했습니다.
많은 연극이 참 좋은 주제로 너무나 재미있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만은 그 중에 인상 깊었던 주제 하나가 과천구역에서 했던
연극이었습니다.
그것은 마귀 두 사람, 남자 여자가 나타나 가지고... 이번에 연극엔 주로 마귀가 많이 등장을 했습니다.
아주 마귀 연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귀가 온누리교회 부흥을 시기해서 여러 가지 공격을 많이 하다가 결국 하용조 목사를 때리자.
그래 가지고 아프게 해서 죽게 만들자. 이런 스토리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굉장히 인상 깊게 그 연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다 온 성도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반전되는 드라마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처럼 아름다운 집을 은혜로 받게 되고 생각지도 못하게 그렇게 귀한 성도님들을 하나님이 성령의 바람을 부어서
원근각처에서 사람들을 보내주고 참 누가 봐도 우리 교회처럼 아름답고 귀한 교회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이런 영광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지만 바로 그 뒤에 우리가 겪어야 할 시험들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목사인 제 자신뿐만
아니라 성도인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현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실제로 이번 기회에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몇몇 성도들이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선교회별로 교회와서 기도하고 또 어떤 분들은 철야하기 시작을 하고 다시 교회가 겸손하고 회개하고 우리가 교만해지지 말고 우리가 높은 자리에
있지 말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자랑하지 말고 이 건물을 자랑하지 말고 우리 온 성도들을 자랑하지 말고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하는 기회를 주셨다고 하는 것, 얼마나 큰 축복이요. 영광인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겸손하기 위해서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구약에도 이런 경우들이 많다. 특별히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경우도 우리는 들어볼 수 있다.
450명의 바알 제사장들과 대결했던 엘리야, 갈멜산에서 1대 450, 450뿐이겠는가?
모든 그 악한 세력과 대결해야 하는 이 밤에 홀로 이 엄청난 영적 전쟁 앞에 섰다.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사건이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여러분 이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늘에서 엘리야는 불을 내리게 했습니다. 제단을 불태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삼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하늘에서... 엘리야가 일곱 번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늘에서 소나기같은 비가 내리게 했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영적 크라이막스였습니다.
그는 하늘의 기적을 본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하늘이 갈라지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그는 들은 것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그러나 19장, 바로 그 다음 장에 비가 쏟아지고 하늘에서 불이 내렸던 이 엘리야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비참한 현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세벨이라고 하는 악한 여자였다.
왕의 부인이었다. 이 부인이 한마디를 한다.
"내가 엘리야의 생명을 취할 것이다."
한 여자의 이 말에 엘리야는, 그 위대한 엘리야는 영적으로 하늘을 경험했던 그 엘리야는 하루 아침에 약호 죽어서 도망가기 시작한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로뎀 나무 밑에서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날 죽여주십시오"
이것이 엘리야였습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이 두 경험, 모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와 싸운다. 
전 애굽의 세력과 바로의 세력과 모세는 홀로 싸운다.
다른 응원군이 없었다. 열 번 싸운다. 열 번 승리한다.
마지막에 바로의 입에서 네 백성을 데리고 가라고 하는 승리의 소식을 듣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그는 탈출을 시작을 했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바로는 다시 마음이 변하여 군대를 동원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았던 것입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였습니다.
이런 딜레마 속에 그는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영적인 높은 경험을 하면 현실적으로는 이런 딜레마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딜레마를 포기하면 되지?
안됩니다.
피해서도 안 됩니다.
그걸 거부해서도 안 됩니다. 그 속에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 훈련을 겪어야만 하나님은 진정한 출애굽을 주는 것이며, 진정한 축복을 주는 것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아브라함의 경우가 바로 그 경우였다.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던 아브라함.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전 가족을 데리고 그리고 짐승을 끌고 하나님이 명령한 그곳이 어딘지 모르지 만은 지시할 땅으로 그가 움직이기 시작을 했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오랜 시간을 걸쳐서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가보니 거기는 뭐가 있었습니까?
기근이 있었습니다.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옥토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토가 있었고 기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기근 속에 그냥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왜냐하면 하나님의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영광 뒤에 오는 고난은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삶에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영광 뒤에 오는 시험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삶에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광야의 세월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이걸 피하지 않고 있는가?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그러나 아브라함은 우리를 대표해서 실수해 주었습니다.
그가 어디로 갔습니까? 애굽으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을 뺏길 뻔했습니다.
큰 수치를 겪었던 것입니다. 성령충만 뒤에 시험이 기다린다는 사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그래서 누가복음 4장 1절에 누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와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성공하고 축복을 받을수록 두렵고 떨림으로 더 하나님께 나오고 있는가?
                      나는 요즘 사업이 잘 된다고 자고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자고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께 더 나와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요즘 진급하였는가? 요즘 모든 일들이 잘 되고 있는가?
                      나는 더 겸손히 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낮추고 있는가?
                      나는 이것만이 광야에서 내가 시험을 이기는 비결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빌립보서 2장 12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전환하기]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가셨는데 두 번째 생각하고 싶은 주제는 이 광야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광야에는 아주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1절에도 나타난 바로 그 광야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광야는 가장 불편한 장소이다. 죽음의 땅이다. 기록에 의하면은 석회암과 자갈이 많다.
그리고 바위가 있는데 둥근 바위가 아니라 칼날 같은 바위가 있는 안식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노출되어 있는 곳, 들짐승들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광야이다.
그리고 이 광야는 강한 햇빛을 받으면 순식간에 찜통같이 변하는 곳이고, 밤이 되면은 아주 싸늘한 곳으로 변하는 곳이 바로 광야이다.
한마디로 말하면은 사람들이 살 곳이 못되는 곳이다.

이 광야와 더불어 아주 정 반대되는 장소가 하나있다.
에덴동산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아마 결혼식을 하고 싶으면은 에덴동산에서 결혼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곳, 그래서 아름다운 장소의 상징, 에덴동산 같고 물댄 동산 같은 곳, 이렇게 표현을 한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낙원이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그러나 최고의 에덴동산의 환경에서 첫 번째 아담은 마귀의 시험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최악의 광야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시험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승리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광야라는 한 장소 앞에서 배우는 두 번째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과 실패는 좋은 환경 나쁜 환경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환경이 나를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가 되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오히려 나쁜 환경 역경은 축복의 기회가 되며 승리의 자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예수님도 여우는 굴이 있고 공중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은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고 말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집 한 칸 없는 것에 너무 슬퍼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오늘 잠자리가 없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는 것을 슬퍼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것은 환경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환경이 나에게 승리를 갖다주거나 신앙을 갖다주는 것이 아닌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문제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오히려 역경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나를 더 축복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든지 환경을 불평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삶에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오히려 그 역경과 고통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장소로 그런 환경으로 바꾸고 있는가?

  [본문에서 발견하기]
세 번째 이 예수님의 유혹에서 발견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는데 광야에 가셔서 그가 사십일 동안 주야로 금식하신
사건입니다.
2절에 나타납니다.
저는 이 사십일 동안 예수님이 주야로 금식하는 동안에 질문이 하나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무얼 하셨을까?'하는 겁니다. 밥을 안 잡수셨으니
무얼 하셨을까?

  [사람 통찰하기]
저희가 영국에 있을 때 저희 집에 어떤 한 분이 오셔서 금식할 일이 한번 있었어요. 온 가정이 금식했어요. 애들까지 다 금식을 했어요.
물론 우리 아이는 한끼 밖에 못했지만 금식을 하는데... 아니 제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어요. 집에 함께 금식해 보니까 밥을 안 먹으니까 할 일이 없어요.
부인들은 특별히 그래요. 부인들을 내가 이해하게 되었는데 밥 준비하지요. 또 반찬 뭐할까가 얼마나 큰 고민인지 몰라요. 왜냐하면 매일 먹어야 하니까.
밥 준비하지요. 그 다음에 밥 먹지요. 설거지해야지요. 설거지 끝나면 또 밥 준비해야지요. 밥 먹죠. 설거지하죠. 또 밥 준비하죠. 밥 먹죠. 또 설거지하죠.
남자들은 몰라요.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그런데 금식을 해놓고 보니까 설거지할 시간도 없지요. 밥할 시간도 없지요. 밥 먹을 시간도 없지요.
하루 종일 가만있어야 되니까.
금식하는 사람은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습니다. 스물네시간이 아니라 사십 팔 시간, 사백 팔 시간 시간을 쓰는 것처럼 온 우주가 스톱해 버리는 것 같아요.
그렇게 조용하고 그렇게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계기가 됩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예수님께서 사십일 동안 금식하셨는데 도대체 무얼 하고 계셨을까? 생각을 해요. 성경에 대답이 없기 때문에 궁금합니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아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지 않았을까?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우면 생각나는 건 하나님밖에 없어요.
하나님과 예수님은 이 때 깊은 영적인 교제를 갖지 않았을까? 사람이 환경에 어려움을 겪고 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죽음의 위기를 부딪쳐도
하나님 찾아요.
나는 분명히 믿습니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졌을 것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는 사람은 환경의 고통이 문제가 되지 않고, 배고픈 것도 문제가 되지 않고, 못 입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삶에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이것이 영적인 교제인 것을 깨닫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구약에 보면은 사십일 금식하셨던 분들이 몇 분계시다.
모세이다. 미다안 광야에서 그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받을 때 사십일 동안 전혀 먹지 않고 금식하셨다. 그리고 난 후에 두 돌판을 받은 기록이 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구했을 때 하나님이 잔뜩 먹인다. 그리고 나서 그가 호렙산으로 가야할 때 사십일 주야를 간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바로 사역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삼 년 동안 아라비아로 가서 은둔생활을 한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위대한 사역 뒤에는 고통스러운 준비가 있고 위대한 준비가 언제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사람 통찰하기]
바이올린 잘하는 사람이 괜히 잘하는 줄 아십니까? 한 사람이 그 연주 하나를 위해서 그 뒤에 피눈물나는 고통이 있고, 피아노 한번 연주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은 화려한 그것만 보지만은 이 사람은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기 성경에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 훈련을 통해 겪은 경험 이것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기가 막힌 환경 속에서 먹지도 못하시고 마시지도 아니하시고 사 십일을 금식하시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갖고 난 후에 그가 얻은 결론이 무엇입니까?
참 재미있어요. 어떤 영적인 큰 환상이나 체험이 아니라 성경에 보니까 사 십일을 금식하고 나신 다음에 뭡니까? 예 할렐루야예요. 배고팠다는 사실입니다. 이거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 무슨 환상을 봤다거나, 뭐 능력을 체험했다는 게 아닙니다.
굶으면 배고프다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금식해 보십시오. 분명히 배고플 것입니다.

여러분이 금식해 보신 분들은 다 잘 알지요. 배고프면 무슨 생각이 납니까?
물론 먹을 것 생각나지요. 먹을 게 왔다 갔다 합니다. 금식한 이틀 시작하면 먹을게 왔다 갔다 합니다.
입은 마르고 쓴 물이 나오고 그냥 먹을 게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나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무슨 일이 생깁니까?
먹을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기 시작합니다. 육체보다 영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굶고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기기 시작합니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으면 영적으로 강해집니다. 여러분 금식하면 배고픈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더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자기가 배고파 봐야 남 배고픈 사람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뭐 화끈한 걸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거 봐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 배고픈 것을 이해하고 인간의 육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좀더 하나님 마음 속에 가까이 들어가는 길입니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한 가지 더 생각할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훈련 때 누가 찾아온다는 사실입니까? 꼭 마귀가 찾아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마귀가 찾아와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시험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일하시지만 마귀도 역시 정확한 때에 일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가장 시험받기 쉬운 때, 환경적으로 불평할 수 있을 때, 예수께서 가장 배고팠을 때, 마귀는 정확한 때에 그 시간을 잡아서 유혹의 손길을
폈던 것입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마귀를 얕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마귀는 나보다 훨씬 더 영악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약점, 나의 허점을 누구보다도 마귀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마귀는 나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언제 화를 내게 해야할 지 마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 순간에 화나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시험 들게 만들고, 나에게 그 순간에 돈을 갖다 내밀고, 쾌락을 갖다 내밀고, 내가 넘어질 수 있는 그 시간까지 마귀는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전환하기]
마귀는 함부로 여러분에게 덤벼들지 않아요. 정확한 때에 여러분을 공격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예수가 가장 시험받기 좋은 그 때를 골라서 마귀는 공격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1절에 보면 다시 보겠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에 가셨는데 광야에 가셔서 영적인 훈련을 하고 있을 때 마귀에 의해서 시험을
받았다 이렇게 읽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마귀에 의해서 시험을 받았다.
                     마귀에 의해서 시험을 받았다는 이 말 속에 두 가지를 더 깊이 묵상할 수 있겠다.
                     첫째는 마귀이다. 

  [사람 통찰하기]
 마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 특별히 믿음이 없는 크리스천들을 포함해서 하는 얘기입니다.
마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귀는 뿔 달린 만화에 나오는 달걀귀신 같은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마귀는 비인격적이고 이러한 과학시대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많은 예수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크리스천들은 또 너무 마귀를 지나치게 생각해서 모든 것을 귀신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어요.
최근에 이런 일 때문에 무리를 일으킨 교단이 있습니다. 목사님들 계십니다. 귀신 쫓는 일을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을 해서 잘못 성경을 오도해 가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경우는 다 건전한 성경적 교리에서부터 멀리 떠나있는 마귀에 대한 잘못된 태도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오늘 성경본문에 나타난 것처럼 분명한 사실은 마귀는 실재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하나님이 실재하신 것처럼 마귀도 실재한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는가?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마귀는 그러면 어떤 존재입니까? 타락한 천사 루시퍼였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되려고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반항하다 쫓김을 받은 천사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공중에 거하면서 아래로는 인간을 유혹하며 위로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반항하고 도전하는 세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해서 마귀는 완전한 참패를 당했고 그리고 계시록에 의하면 앞으로 올 천년왕국 때 마귀는 궁극적으로
결박을 받을 것이며 최후 심판 때 영원한 불 못에 심판을 받는 것이 마귀의 운명으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마귀는 예수님의 탄생 때부터 십자가까지 끊임없이 예수를 대적했지만 한번도 예수에게 성공한 일이 없었다. 결국 완전히 참패하고 만 것이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지금 우리가 마태복음 공부를 해나가는데 이제 계속해서 공부를 해 가면 이것이 어디까지 가느냐 면은 십자가까지 쭉 올라갑니다.
그 안에 이 반대적인 상황이 하나 나타나는데 그것이 계속해서 마귀가 상황을 만들어 주면서 계속해서 예수와 마귀와의 이 대결로 가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참패하는 것이 이 마태복음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성경에 의하면 마귀는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계시록 12장 10절에 보면 고소자로 나타난다.
계시록 9장 11절에는 그는 파괴자로 나타난다.
마태복음 4장 3절 여기에서는 마귀는 시험하는 자로 나타난다.
에베소서 6장 16절에는 악한 자로 불리어지고, 마태복음 12장 27절에는 바알세불, 더러운 존재로 나타난다.
고린도후서 6장 15절에는 벨리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고린도후서 4장 4절에는 이 세상의 신이라고도 말한다.
마가복음 3장 22절에는 악귀의 머리며 요한복음 14장 30절에는 이 세상의 왕이며 에베소서 2장 2절에는 공중권세 잡은 자며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어두움의 권세자이다.
특별히 계시록에서는 12장에서는 용이라도 말하고 또 옛뱀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이 마귀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깨달은 자들에게는 마귀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마귀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 통찰하기]
많은 현대인들은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면서도 마귀의 실제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깨달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마귀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마귀가 주는 어떤 공격에서부터 자유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고 강력하게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에베소서 6장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이것이 마귀와 싸워 이기는 비결이다.
무시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구원의 투구와 의의 흉배와 진리의 허리 띠와 평안의 복음의 신과 믿음 방패와 성령의 검 곧 말씀을 가지고 마귀에게 대적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현실적인 처방이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자 이것이 우리가 첫 번째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귀에 의해서 시험을 받았더라.

두 번째 이 구절에서 더 깊이 한 걸음 나아가서 생각해야할 주제는 시험을 받는다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 의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험하다'라고 하는 단어의 뜻을 좀 더 깊이 연구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헬라어 원어에는 '페이라제인'이라고 하는 말로 쓰여져 있는데, 영어로는 두 가지 단어로 이 말이 번역되어 쓰고 있다.
하나는 'tempt' 'temptation'하는 이 '유혹하다'라고 하는 'tempt'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번역은 'test'이다.
이 두 가지는 한 단어에서 영어로 두 가지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페이라제인'이라고 하는 뜻은 이 전자 'temptation'보다는 'test'라는 쪽에 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이 '페이라제인'이라는 말을 'temptation' '유혹, 시험'이라는 말로 번역했을 때는 나쁜 의미가 있다.
유혹을 하는 것은 유혹해서 그 사람을 좋게 만들려고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이 'temptation'은 유혹과 시험을 해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불신앙을 갖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데 이 'temptation'의 뜻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test'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시험하여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좋은 것을 선택해 주기 위해서 잘못된 것은 미리 방지해 주기 위해서 'test'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첫 번째 나쁜 의미의 이 'temptation'은 마귀가 쓰는 것이다.

두 번째 좋은 의미의 'test'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하나님이 나를 시련을 주실 때는 언제나 좋은 결과를 주시기 위하여 미리 사전에 나쁜 것은 다 빼기 위하여 불량품은 제거하기 위하여
                      나를 시련으로 들어가게 해서 온전하고 흠이 없고 완전한 성도로 만드시는데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마귀가 나를 유혹하고 나를 시험하는 것은 나에게 쾌락을 주고 나에게 돈을 주고 나에게 권력을 주어서
                      나를 잘못 환상 속에 갖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죽이고 파멸시키고 나를 마귀의 자식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사탄은 분명히 40일 금식한 예수를 배고프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시험했는데 그것은 'temptation'이다. 
                      분명히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하고 하나님의 도움없이 네 자신의 힘으로 메시아 구원을 이루게 하는 그 유혹을 줌으로 말미암아 악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마귀의 유혹이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유혹은 언제나 마귀가 먼저 걸면 나는 그 유혹에 빠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이 때 하나님은 이 유혹, 시험을 자기의 방법으로 바꾸신다. 이게 'test'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그 마귀가 던져놓은 함정과 유혹에서 내가 허우적거리고 방황하고 당황할 때 하나님은 거기에 개입하셔서 나를 'test'로 바꿔버리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그 마귀가 던져놓은 그물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를 건져내므로 나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고 나로 하여금 거룩하게 하고
                      나로 하여금 온전하게 만들고 흠이 없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쓰는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본문에서 발견하기]
이것이 오늘 이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진리입니다.
마귀는 분명히 예수를 파괴하기 위하여 유혹의 손길을 펼쳤지 만은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도록 가장 가치있는 승리의 기회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1장 2절에서 (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할렐루야, 나는 하나님은 나의 죄악의 사건을 최선의 사건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두 발이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지만은 두 발이 잘려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두 손이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만은 두 손이 잘라서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살아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만은, 어떤 시간에는 내가 죽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도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사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유혹 시험 그리고 고통을 주어 파괴하고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사탄은 택함 받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은 마귀의 시험을 사용하셔서 나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성품을 거룩하게 하시고 인격을 온전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은 결코 사탄의 방법으로 나를 시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기도]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야고보서 1장 13절(~14절)에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나의 죄와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아 마귀의 공격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내게 임하여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은 나에게 연단의
                      기회로 바꾸어 주신다는 뜻읖ㄹ 깨닫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나의 믿음을 연단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그게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누구를 바치라고 말합니까?
백세에 얻은 이삭을 바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난처하게 만들어 파멸시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라 그 믿음을 실현하여 축복을 주고자 했던 의도였습니다.
그래서 순종했더니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에게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 죄인들이 받는 세례도 받으셨고 그래서 이번에 꼭 세례받으세요.
제가 지난주도 말했지만 예수님도 세례받으셨는데 여러분도 꼭 세례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광야에 가셔서 사십일 뭘 하셨어요?
금식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에 의해서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히브리서 5장 7절에 보면 기막힌 말이 나온다.
"그(가)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말했으며, 특별히 8절 말씀이 중요하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결론]
여러분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의 몸을 입으실 때는 예수님도 시험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육신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통곡과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예수님도 그런 시험을 받았는데 우리가 시험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시험을 받을 때 거기서 낙심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시험받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나도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승리케 하신 주님을 바라보므로 말미암아 영광스런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 모두 쓰임받는 축복의 그릇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귀의 시험이 실제로 존재하고 순간순간 마귀는 우리를 공격하는 것을 아옵나이다.
그때마다 절망하지 말게 하시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승리 속에 우리도 함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들 가운데 육체적으로 시험받고 있는 사람있습까?
정신적으로 시험받는 사람있습니까?
말할 수 없는 역경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이 시간에 저들에게 예수님 보여주시옵소서.
주님의 피묻은 손으로 안수하여 주시고 어루만져 주셔서 이 모든 시련이 축복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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