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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 주일설교 묵상] 자존심과 교만을 버리게 하소서! [15절]
본문선택 마태복음  3장  13절 - 17절
작성자 yiss 작성일 2008-03-18 오후 9:28:11 조회 3597 건 추천 0   
내용


[하용조 목사 주일설교 묵상] 마태복음 3장 13-17절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1987년 11월 22일]

  [본문에서 발견하기]
13절입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이 본문은 특별히 그 예수님의 첫 번째 이 행동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기대를 뒤엎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13절의 말씀 가운데 제일 첫 머리에 '이 때'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아주 유명한 시간적 접속사인데 바로 이 때에 예수께서 그가 자랐던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오신 바로 그 때이다.
                     이 말은 30년 동안의 기다림, 침묵 그리고 준비의 때를 마치고 요단강으로 첫 번째 그의 사역이 시작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3장 23절에 보면은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었더라는 말씀이 있다.
그러니까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삼십년 동안 기다리고 준비하고 침묵한 바로 그 때를 의미한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이것에서 보는 아주 중요한 진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한 때에 일을 행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은 결코 늦는 법도 없고 결코 일찍 오시는 법도 없다는 것을 믿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은 결코 기분 내키시는 대로 상황에 따라서 행동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은 우연히 행하시지도 아니하시며 운명에 의해서 행동하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정반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상황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하나님이 주신 이 놀라운 섭리를 우연으로 생각해 버리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하나님은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계시며, 그에게는 인격적인 의지를 가지고 계시며 그것과 함께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한 때를 가지시고 
                      우주 만물과 그리고 인생을 지배하시고 섭리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예수님의 때에 대한 이해>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은 결코 자기 때가 아니면 예수님은 행동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에 보면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라고 하면서 기적을 베풀 것을 거부하셨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이 때가 되시면 모든 사람은 도망을 가도 예수님은 피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앙 이해란 시간 이해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시간을 이해한다는 것, 때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말할 때와 침묵할 때, 기다릴 때와 행동할 때를 알고 삶에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신앙인으로 이 '때'를 이해하므로 초조해 하지도 않고 조급해 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무관심하지도 않는 사람인가?
                     아니면 예수믿는 사람으로 이 시간을 이해를 잘못하여 때를 잘못 이해하므로 수치를 당하고 낭패를 보는 사람인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구약에 보면 하나님은 자기의 사람을 키우는데 있어서, 믿음을 키우는데 있어서 특별히 시간의 훈련을 시켰던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세이다.
모세를 하나님은 사십 년 광야 속에서 그는 철저하게 훈련시키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준 이후로 25년의 세월동안 약속의 성취를 주지 않고 훈련을 시켰던 것을 볼 수 있다.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런 까닭에 이 약속에 대한 기다림을 갖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사랑에 대한 정의도 성경은 그렇게 말한다.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약속이 분명한 사람은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을 깨닫고 삶에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그 기다림은 앞으로 이루어질 사건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성취된 기쁜 기다림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초조해 하고 조급할 때 어떤 말씀을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도 때가 되어서 행동하셨고, 때가 되매 그는 침묵을 깨고 기다림을 깨고 행동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삶에 본보기로 삼고 있는가?

  [전환하기]
오늘 성경 본문에서 두 번째 생각할 주제는 계속해서 1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문제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거꾸로 세례를 받으시겠다고 요청한 점에 있다.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사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신을 들기도 다른 말로 만하면 예수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본인 스스로가
                     말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에게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예수는 당연히 세례 요한이 마련해 놓고 준비해 놓은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히려 거꾸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은 정반대의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스스로 가셔서 내가 너에게 세례를 받으시겠다고 청한 점이다.
                     이것이 인류의 왕이신 우리의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초의 행동이다.

<세례란 무엇인가?>
원 뜻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물에 잠근다는 뜻이 있다.
두 번째는 물로 씻는다는 뜻이 있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쇄도하다, 충만하다'고 하는 뜻을 가진 것이다.
다시 한 마디로 정리하면은 세례란 죄를 씻는 행위이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 회개의 표로써 죄를 씻쳐 정결케 하는 것이 바로 세례이다.
회개의 열매에 합당한 예식이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세례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죽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사는 것을 세례하고 정의를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세례라고 한다면 세례는 반드시 죄인이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겠다고 자청한 점에 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전환하기]
그런데 이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온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놀란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이 첫 번째 그의 공생애 사역의 제일 첫 번째 행동에 대해서 당황하고 예수님의 요청을 거부했던 것이다. 

                      "아니 어찌 당신이 나에게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 때 예수님께서 조용히 세례 요한을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례를 허락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15절 마지막 부분에 있는 한 줄의 얘기입니다.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여러분 이 말씀 속에는 아주 중요한 구원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는 것 입니다.

[말씀관찰하기-
본문깨닫기] :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셨는데 하나님이심을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마태복음 1장에서 공부해 온대로 그분은 사람이 아니시다. 하나님이시다.
                      동정녀에게서 잉태한 것을 보면 그는 죄인이 아니시다. 죄가 없으신 분이시니다.
                      그러나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죄인으로 죽어야만 하셨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를 의롭다 하셨고 하나님의 의를 긍극적으로 이루게 하시는데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이 있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 자기 죄 때문에 세례를 받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그가 인간의 몸으로 왔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그가 세례를 달성하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이사야 53장 5절에서 우리는 좀 더 정확한 그 뜻을 찾을 수가 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도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죄 없으신 그 분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죄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나의 죄를 구원하시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인 것을 깨닫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이사야 53장 12절에는 좀 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에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상황에 들어오셔서] 그는 자기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서 그는 첫 번째 그가 해야하는 구원의 가장 결정적인 표인 세례를 자청하신 것이다.

로마서 8장 3절에 보면은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유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예수가 세례받으신 것은 예수님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나의 죄 때문에, [우리 인류의 모든 죄 때문에] 그가 세례를 대신 받으심으로써
                      그의 구원 사역을 시작하신 것을 깨닫고 있는가?

  [전환하기]
계속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주제는 예수님이 그 세례를 받으신 그 모습에서 발견되는 겸손과 온유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특별히 예수님의 모습 전에 누가 왔었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왔었습니다.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예수님의 세례받으시는 모습은 아주 대조를 이루는 부분입니다.
구경하고 시험하러 왔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모습을 비교해 보십시오.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그는 아주 무서운 말을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러 오실 때 세례 요한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두려움과 떨림, 존경과 감격, 그것으로 가득 차 있는 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관찰하기-
본문깨닫기] :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자기를 오히려 사람의 종으로, 종의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그의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굉장히 놀라운 충격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이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우리는 이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또 다른 예수님의 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요한복음 13장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저녁을 잡수시다가 최후 만찬 때 갑자기 일어나셔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를 가져다가
거기다 물을 담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모습과 이 모습은 일맥상통을 합니다.


  [사람 통찰하기]
대부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교회나 교회 밖에서 분수에 넘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체면이 손상을 받았거나 정당한 대우를... 예컨대 나이에 대접을 못 받았다든지 직업에 대접을 못 받았다든지 자기의 수준의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점잖은 사람은 물론 속으로 화를 내시겠지만 아무튼 불쾌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입니다.


  [교회 통찰하기]
대부분의 많은 교회가 어렵고 시끄럽고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자기의 위치를 알아주지 않고 자기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오히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그가 겸손히 자기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에게 거꾸로 가서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겸손히 말했다고 하는... 자기를 섬겨야 하는 제자들의 발을 예수님은 가셔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은 의자에 앉아 있고 거꾸로
                      사람의 몸 중에서 가장 더러운 발을 예수님은 몸소 씻쳐 주셨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착각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종종 나 자신 속에서 그리고 나의 주위에서 이 사실을 발견하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0장 38절에서 서로 높아지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질문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세례, 그것은 세례의 본질이 십자가를 통해서 다시 부활해야 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세례의 본질로 본다 면은 앞으로 이 세례라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물을 뿌리거나 단순하게 물 속에 들어가는 그런 세례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이러한 세례까지 너희들이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신 그런 질문이다.

누가복음 12장 50절에도 그 비슷한 말씀이 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세례 요한은 물세례를 주었다. 예수님은 성령과 불세례를 주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례를 스스로 완성시키시기 위하여 그는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다. 왜냐면 십자가와 함께 죽는 것이 세례이기 때문에...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이 있고 난 후에 부활이 있다.

예수님의 진정한 세례는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다. "너희들이 내가 앞으로 져야할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느냐?"
"내가 이 십자가를 지기까지는 나의 답답함이 얼마나 크겠느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의 세례는 이 두 성경 구절을 종합해 보면은 세례 요한의 물세례에서부터 시작되어 십자가에서 죽음에까지 이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예수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우리들을] 위해서 그가 겪어야만 했던 세례였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예수님도 겸손히 세례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셨다면 나는(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 가운데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은) 더 이상
                      세례를 안 받아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세례받는 것을 주춤거리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예수님도 세례를 받았거늘 하물며 내가 무엇이관대 그렇게 뽐내면서 세례를 안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우리는 그 세례를 아직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가 되었는데요?" "아이 뭐 제가 아직 뭐 세례받을 때가 됐나요? 아직 뭐 저는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준비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에 의하면 회개하고 뭘 받았습니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럼 준비 안 됐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예요?
회개가 아직 안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회개가 안 된 것입니까? 회개를 못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분명해야 합니다.

그 말속에는 아직도 회개를 못하겠다고 하는 고집이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아직 승복하지 못하겠다.

항복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여러분의 자존심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 고상하게 표현하면 "제가 뭐 저 같은 사람이 아직 뭐 세례 받을 수 있나요? 저야 뭐 아직 멀었지요"라고 하는 말 속 뒤에는 "나는 하나님에게
아직도 항복하기 싫다. 나는 내 죄를 인정할 수 없다. 나는 내 인생을 아직도 바꿀 마음이 전혀 없다"라고 하는 그런 내용이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말씀관찰하기-
본문깨닫기] : 그렇다. 진정한 세례의 준비는 회개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내가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두 손들고 항복하면서 주여 내 인생이 잘못되었고 내 삶이 잘못되었으니 이제 나를 스스로
                      고치기를 원하며 내 인생의 방향을 수정하기를 원하는가?

  [결론]
그렇습니다. 그것이 세례입니다.
나는 이번에 성도님들이 크리스마스 때 겸손하게 하나님께 항복하고 지식이 아닙니다. 뭘 많이 알아서 세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으로 여러분이
회개했다면 이제 세례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두 손들고 항복하면서 회개하면서 보혈로 여러분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의 피 묻은 손으로
여러분의 죄를 씻는 그런 축복이 나는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여러분이 구원의 문에 들어오는 축복입니다.


  [본문에서 발견하기]
오늘 본문에서 또 한가지 발견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순종입니다.
15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렇게 허락하라 하시면서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처럼 거절하고 그리고 어쩔 줄을 몰랐던 세례 요한이 여기에 즉시 허락했다고 말합니다.


  [사람 통찰하기]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제 입장과 바꿔놓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오셨는데 세례를 베푸는 날 저보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라고 그러면 내 심정이 어떻겠나? 바꿔서 생각을 해 본 것
입니다.
참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감히 어떻게 세례를 베풀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만약에 여기계신 여러분들 갑자기 설교하다 말고 말이지요. 세수대야를 몰래 내가 준비해 놓았다가 "발 벗으세요" 그러고 제가 발을 씻쳐
준다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여러분이 내 발 씻쳐 주는 게 편할 겁니다. 베드로가 당황했던 것이 그거예요.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을 씻쳐 주었더라면 그건 편한 일이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쳐 주실 때 베드로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교만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더러운 발을 씻쳐 주신다고 하실 때 우리 어떻게 해야 됩니까?
더럽지만 고통스럽지만 그 발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설교를 하고 오늘 믿기 위해서 결정하라고 도전을 할 때 사람들이 주저하는 것은 이 발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예수님이 발을 씻쳐 주실 때에 제자들이 발을 내놓은 것처럼,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말할 때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하라고 하시니까 그대로 순종했던 것, 그것이 순종이다.
                      그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나의 신앙은 언제나 자존심이나 교만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기도] : 자존심과 교만을 버리게 하소서!


  [사람 통찰하기]
예수를 믿어도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콧대를 꺾지 못하고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수많은 장애물들이 내 주위에 그대로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오면서 계속 불평하면서 오는 사람있어요. "내가 교회가나 봐라" 그러면서 교회 오고 "다시는 안 한다"고 하면서 또 하고.
그거 왜 그래요? 자존심 때문에 그래요.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자존심이 있어서 아직도 교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불평과 원망, 시비와 비판이 많은 것은 오히려 다른 이유 때문이기보다는 나의 자존심과 교만 때문이라고 말하는 솔직함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나의 생각, 습관, 전통, 자존심을 버리고 그것을 허락해야 하는 결단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나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때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시간이 지나가면 그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을 하는 체험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이해되지 않는 그 시간에 내가 거기서 비판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나면 그 다음에는 꼭 후회할 시간들이 찾아온 체험을 가지고 있는가?

  [전환하기]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할 주제는 세례의 결과입니다. 16절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성경에 '하늘이 열리고' 말씀에는 1)번하고 제일 밑에 '어떤 사본에는'하고 다른 성경은 '자기에게 열리고'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열렸는데 모든 사람에게 열린 게 아니다. 자기에게 이 하늘이 열리고, 그리고 자기에게 비둘기 같이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겸손하게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세례를 받으실 때 놀라운 싸인(sign)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 열린 표적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진정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성령으로 인치신 성도들에게는 하늘이 열리는 사건을 본다.

구약에 에스겔서 1장 1절부터 19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이 있다.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셨다"라고 하면서 에스겔서가 시작이 된다.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이 내게 보이셨다.
그 다음에 성경을 죽 보면 먹구름 뒤에 있는 하나님의 은빛 광채를 보면서 네 생물과 수레와 바퀴들, 그리고 엄청난 하나님의 군대들이 하늘에서 지금 진을 치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서 본다.

에스겔 뿐만 아니다. 신약에 보면은 스데반이 사도행전 7장 56절에서 그가 순교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이는 그 때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까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그가 본 것이다.

요한계시록 4장 1절이나 11장 19절이나 19장 11절에 보면은 요한은 계시록에서 여러 가지 하늘의 환상들을 그가 보기 시작을 한다.

유명한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4절 사이에서 셋째 하늘로 끌려간 것을 얘기한다.
내가 셋째 하늘로 올라갔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진정한 하나님의 세례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뭐가 열린다? 하늘이 열린다.
여러분들은 하늘이 열린 것을 경험하셨습니까? 물론 무슨 영화를 보듯이 아니면 연극에서 스크린이 막이 열려지듯이 그런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이 천국에 대한 환상이 이 지상에 고통이 있고 감옥에 갇히고 억울함을 당하고 역경을 겪는다 할지라도 그가 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고 하나님의 수레가 돌고 있고 하나님의 바퀴가 있고 불 수레와 불 말들이 지키고 있는 그래서 그 하나님은
이 먹구름 속에서도 은빛 광채를 통해서 그 날의 약속을 준비하고 계시는 그 환상들을 보여준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그가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겸손히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다"라고 하는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뜻을 다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신앙경험 정도로 밖에는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아주 신앙이 천박한 사람들처럼 기껏해야 아마 꿈꾸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아주 물질적으로 이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신령하고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이 종말에 그리고 그 날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축복들을 그 하늘의 보좌 영광들을 매일 보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왜 많은 순교자들이 그렇게 죽을 수 있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많은 순교자들이 그렇게 죽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이 하늘이 열린 것을 보면 피곤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이 하늘이 열린 것을 보면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하늘이 열린 것을 보면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하늘이 열린 것을 보면 절망하기 않는 이유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담대하게 성경이 약속한 그 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세계를
                      향하여 뛰어가고 걸어가며 찬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삶에 실천하고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두 번째 세례받고 예수께서 물위로 건너오셨을 때 두 번째 싸이 있었다.
그것은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기에게 임하는 경험인 것이다.

진정한 세례는 성령체험을 경험한다. 그것은 단순하게 하나의 형식이 아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온 몸을 통하여 온 인격을 통하여 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해 오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체험이 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사도행전 오순절 사건>
오순절 날에 성도들이 모여서 합심하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불이 혀에 갈라지는 것처럼 하는 것이 보였다고 말했다.
홀연히 하늘에서 강한 바람, 급한 바람 소리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성령의 소리를 그들은 들었고 성령의 바람을 그들은 맞았고 성령의 불을 그들은 본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세례 때 있었던 현상이었다.

아마 유대인들에게는 비둘기라고 말할 때 온유와 겸손을 상징하는 비둘기의 상징도 있겠지 만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는 제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제사를 드릴 때 부자들은 소를 잡아 드린다. 돈이 있으니까.
중간 계급은 양을 잡는다.
그러나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를 제물로 드린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 속에 복음을 심어 주었던 그 말씀과 연결시켜 보면 이 비둘기처럼 성령이 임한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도 볼 수 있다.

이사야 61장 1절에 보면은 주의 신이 내게 임하였을 때 성령이 내게 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여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임재이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의 성령의 임재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예수께서 성령세례를 받으사 하늘이 열려서 이 하늘의 영광을 보았다.

두 번째 싸인이 성령이 임재했다는 말씀은 이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시고 가르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는 바로 이 성령의 능력이 동시에 필요했던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지 않았더라 면은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그의 사역의 제일 첫 머리에 성령의 충만함, 성령의 임재가 있어서 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가 모든 사역을
감당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이 말씀을 우리가 보충해 주는 말씀이 히브리서 5장에 있습니다.

그가 육체에 계실 때 그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하나님께 눈물과 통곡으로 그가 기도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면 왜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그가 인간의 몸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받았다면 하물며 여러분과 나야 두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어찌 성령의 임재와 능력없이 주의 사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봉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의지와 책임감만으로는 주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을 받으셔야만 우리는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늘의 비전과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성령의 충만을 입어야만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생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환하기]
이제 마지막으로 17절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말씀관찰하기-본문깨닫기] :

성령의 이 임재와 동시에 하늘에서 음성을 그가 듣게 되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를 봅니다.
처음에 예수님이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시지요?
그 다음에 성령의 임재가 있지요?
그 다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성령의 임재,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지상의 나라를 위해서 지상의 왕으로서 오신 분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왕, 하늘 나라 하늘의 왕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겸손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 세례를 받고 나서 하늘 문이 열렸고, 성령이 임했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었던 이와 같은 똑같은 사실이 오늘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나는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너는 네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이 확신을 가지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들에게 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진정한 세례가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늘 문이 열리는 그래서 하늘의 환상을 보게 하시고 성령의 충만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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