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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 주일설교 묵상] '후회'가 아닌 '회개'를 하게 하소서! (2절)
본문선택 마태복음  3장  1절 - 6절
작성자 yiss 작성일 2008-03-13 오후 8:44:21 조회 2752 건 추천 0   
내용


[하용조 목사 주일설교 묵상] 마태복음 3장 1-6절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  [1987년 11월 8일]

  [사회 통찰하기]
민주화가 잘 진행되는 것 같아도 이 나라를 생각하면 저희들의 마음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더 많은 기도와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됩니다.
특별히 요즘에 대통령 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선자 노태우)에 출마한 사람을 보면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 대통령은 꼭 내가 해야 하며 국민들은 한결같이 나를 지원하고 있다고 하는 무서운 착각 속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이 나라는 다른 사람은 안되고 나만이 잘 다스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적격자라고 아무 부끄러움 없이 말하고 있을 때 우리는 더욱 불안해 지게 됩니다.

  [전환하기]
그러나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위대한 한 사람, 여인이 난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한 사람, 예수님이 직접 소개해 주었던 진짜 위대한 한 사람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오늘 성경에 나타난 대로 세례 요한입니다.

구약의 어떤 인물보다 위대했고, 신약의 어떤 인물보다 뛰어났고 그리고 인류사에 어떤 인물보다 거룩했던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는 선구자로 미리 와서 주의 길을 예비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결코 오래 살지 못하고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다가 오래 살지를 못하고 일찍 처형을 당한 사람이었다.

왕은 어디에서나 혼자 나타나지 않는다. 반드시 수행원이 따르기 마련이다.
왕의 행차에도 길을 예비하는 행렬이 먼저 나타나고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모든 준비가 끝나면 왕이 등장을 하는 법이다.

우리의 왕이시며 인류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등장하실 때 아무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무 누구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했던 세인의 눈에 감추어졌고 모든 사람의 인구에 회자하지는 않았지만은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가장 위대했던 한 인물 세례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의 길은 닦아졌고 예수님의 길은 준비되어져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할 때 나타나게 하셨다. 이 분이 바로 세례 요한이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아사야의 예언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말씀을 응한 것이다.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가장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 봉사할 때이다. 얼마나 오래 살며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가에 인간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세례 요한은 짧은 생애를 살았다. 그러나 그는 그 생애에 있어서 가장 값진 일을 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오래 사는 것에 연민을 두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냐를 물어보고 있는가?

  [전환하기]
세례 요한은 세 가지 측면에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는 탄생이요. 두 번째는 그의 사역이요. 세 번째는 그의 죽음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그 길을 어떻게 세례 요한이 미리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면서 닦았는가를 그 탄생에 있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누가복음에 의하면은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육 개월 먼저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탄생에 있어서도 놀랍게도 예수님처럼 기적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누가복음 1장 7에 나타난 말씀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특별히 세례 요한의 어머니가 되었던 엘리사벳은 잉태할 수 없는 불임의 여자였다.
이런 불가능의 조건 속에서 애기를 난다고 하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애기를 낳을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해 준다.
이때 그 남편이 그 말을 믿지 못해서 벙어리가 일시적으로 되는 그런 에피소드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잉태했던 사람이다.

누가복음 1장에서 계속해서 보면 세례 요한이 태중에 있을 때 예수를 만나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태중에 있을 때 그 어머니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하다는 표현이 있다.
다시 말하면은 세례 요한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더 성령충만했던 것을 본다.

그리고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계속해서 그는 성령이 충만한 강한 그 영이 강력한 사람으로 훈련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임신하신
분 대상)
                   나는 (이 설교를 듣는 사람 가운데) 임신한 사람으로 부부가 성령충만하기를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부모가 성령충만하면 그것이 영향이 되어서 내 아이까지 성령충만한 것을 세례 요한을 통해서 보고 있는가?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을 주 앞에 돌아오게 하며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소유했다 라고 세례 요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전환하기]
여러분
세례 요한의 이러한 탄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잉태하여 태어날 것에 대한 하나의 선구자적인 그런 준비였다고
하는 사실
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누가복음 1장 36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특별히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마리아가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이제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고 하는 이 예언의 말씀이 있었을 때 마리아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을 때 바로 세례 요한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마리아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6~37)

이러면서 천사가 마리아를 위로 해 준다. 마리아에게 격려해 주는 그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을 보면 분명히 세례 요한의 잉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준비였다고 하는 사실이다.

  [전환하기]
또 예수님의 그 탄생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자라던 모습과 세례 요한이 자라던 모습이 너무 대조가 됩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누가복음 1장 80에 보면은 세례 요한이 자라면서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자랐다고 하는 말씀과 함께 예수님이 몸이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하는 그 말씀과 비교해 보면 바로 정말로 세례 요한은 그의 생애 자체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사람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두 번째 세례 요한은 사역에 있어서 그의 삶에 있어서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세례 요한의 첫 번째 메시지가 무엇인가? "천국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라는 것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하는 메시지이다
.(마 3:2, 눅 3:7~8)
이것은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와도 상통을 한다.

마태복음 4장 17이나 마가복음 1장 14에 보면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가 나타난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라고
하시는 메시지의 선구적인 준비를 하신 것이다.

세례 요한은 그의 이름처럼 세례를 베푸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역이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였고 불세례였다.

세례 요한은 참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한 사람이었다.
세례 요한의 삶을 보면 그는 유다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과 가죽 허리띠를 띤 무소유의 단순하고 청결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 9:59)"고 하시는 예수님의 생애를 그가 미리 보여준 것이다.

세례 요한의 삶이 겸손이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 수 있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진정한 겸손은 진정한 용기임을 세례 요한을 통해서 보있는가?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예수님의 생애는 사역이었다.
예수님은 참으로 깨끗한 그리고 무소유의 단순한 삶을 사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생애에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임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죽음에 있어서도 선구적 길을 닦아 놓았다.
세례 요한은 제 명에 죽지 못한 사람이다. 불의에 대항하고 부정에 항거하다가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리고 드디어 쟁반에 그의 목을 담게 되는 최후를 마쳤다. 그것이 세례 요한의 생애였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이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눅 7:28)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오래 사는 것만이 꼭 축복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잘 사는 것만이 꼭 축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비록 쟁반에다가 자기 목이 담겨진다 할 지라도 진리에 따라 사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의롭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임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가?

예수님도 서른 세 살에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것을 볼 수 있다.

  [전환하기]
그러나 우리는 세례 요한과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중요한 관계를 세례 요한의 입술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과 예수와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마태복음 3장 12
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례 요한이 나와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장 27에는 나는 그이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세례 요한 자신이 예수에 대한 설명이었다.

  [전환하기]
그는 예수의 탄생과 예수의 삶과 예수의 죽음을 거의 비슷한 시각에서 이루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만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태도는 분명했던 사람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 3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것이 진정 주님을 따르는 자의 모습이다.
자기의 삶과 죽음을 송두리째 바뀌고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그리고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아니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 속에서 진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전환하기]
세례 요한은 자기의 위치와 사역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그는 사역의 월권도 없었고 사역의 포기도 없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일시키면은 월권하지 않으면 포기하는 사람인가?
                   나는 나의 위치와 나의 사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가?

  [전환하기]
세례 요한은 누구보다도 주제파악을 잘 했던 사람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왜냐하면 요한복음 1장 19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세례 요한이 나타나고 있는 그 능력과 그 인기와 그 모든 것을 볼 때 예수와 방불한 것을 그들은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질문했다.

"그대가 누군가? 당신이 누군가 우리에게 말하라." 이 때 세례 요한은 이 말을 숨기지 아니하고 큰 소리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 1:20)라고 말했다.
놀라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그리스도인 줄 알았다.
그만큼 능력과 불같은 메시지와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숨기지 아니하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라고 말했다.

23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예수님은 '말씀'이에요. 자기는 '소리'라고 그랬다. 자기가 말씀이라고 그러지 않았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조금 능력받고, 조금 은사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좀 위치가 올라가면 환경이 좋아지면 대접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월권을 하지 않으면 포기하는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그러나 세례 요한은 "나는 소리다. 말씀을 위한 지나가는 한 소리에 불과하다"라고 그가 자기의 위치를 자기 사역의 본질을 분명하게 말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전환하기]
그러면 이 위대한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장 1절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특별히 1
에서 '그 때'라는 말은 바로 세례 요한이 사역이 시작하던 때, 그 때는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하던 때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2장과 3
은 30년이라고 하는 엄청난 세월이 금방 지나간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유년시절이 나오고 그 다음에 3장에 들어가서는 바로 30세 사역의 때가 온 것을 볼 수가 있다.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그가 설교하기 시작했다. 

  [교회 통찰하기]
우리는 이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으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설교자와 다르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의 설교 강단은 온누리교회처럼 이렇게 화려한 강단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모습은 저처럼 이렇게 멋있는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여러분과 다른 심령의 상태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말씀관찰하기-본문 깨닫기] :
세례 요한의 설교에는 화려한 수식어가 없다. 언어의 마술사가 아니다. 완벽한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메시지는 아주 솔직하고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먼저 회개하라고 하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다시 듣고 있는가?

  [교회 통찰하기]
여러분도 들어야 하고 설교하고 있는 나도 들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현대 기독교는 처음에 성경이 말했던 기독교와 이미 변질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참 다르게 변해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여러분이나 나나 이 세례 요한의 단순하고
솔직하고 성령충만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회개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말씀관찰하기] :
회개라는 말은 두 단어의 합성이다. '메타'라고 하는 말과 '노에오'라고 하는 말의 합성이다.
'메타'라는 말은 '다르다'라고 하는 뜻이다. '메타노이아' '메타노에오' 이렇게 말하는데 '노에오'라는 것은 '생각'이라는 말이다.
이 두 단어를 합해 보면 '생각을 다르게 하라' 이것이 회개이다.
생각을 고쳐 먹어라. 이것이 바로 회개의 원 뜻이다. 

 본문
깨닫기 : 회개란 단순히 어떤 사건에 대한 후회나 슬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깊은 뜻이 그 안에 있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것에서 돌아서는 것이요. 방향을 바꾸는 것이요. 결정된 마음과 뜻을 전환시키는 것을 회개라고 성경은 말한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회개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나의 회개는 입술의 회개와 눈물의 회개 밖에 없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가?


  본문 깨닫기 : 성경의 회개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서 행동을 다르게 하는 것을 회개라고 말한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교회에서 그렇게 많이 회개에 대한 설교를 듣고 그처럼 많이 회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건만 나의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회개가
                      덜 됐기 때문인 것을 인정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후회'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가?

                      나는 회개란 행동의 변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삶에 적용하고 있는가?
                      나는 회개하면 회개할 때는 죄를 후회하고 가슴을 치고 슬퍼하고 애통하는 것이 뒤따르지만 슬픔 자체가 행동을 바꾸는 것은 아닌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기도] '후회'가 아닌 '회개'를 하게 하소서! 
                   


  [사람 통찰하기]
어떤 사람은 요. 부흥회 갔다가 설교를 듣고 또 기도하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제일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눈물에 자기가 속아요. 그냥 눈물 줄줄줄 흐르면서 가슴을 치며 이 죽일 놈이라고 하!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데 그냥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자기가 생각해 볼 때도. 기가 막혀요. 그래가지고 굉장히 자기가 거룩해 진 줄로 착각을 합니다.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것은 회개 아닙니다. 그것은 감상이에요. 낭만이고. 회개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변하지 않는 크리스천, 열매가 없는 크리스천은 불에 타다 남은 동강같이 아주 불쌍하고 흉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를 돌아보고 있는가?

  [전환하기]
회개란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3장) 9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회개에는 전통이나 지위나 문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높은 사람이라고 회개를 덜해야 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돈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나님이 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누구든지 회개해야 한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그는 그 말에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다. 단순히 회개하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불처럼 역사 했던 것이다. 회개는 성경 전체의 중심 메시지이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했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가복음 6장 12에 보면은 밖에 나가서 전도할 때 맨 처음 한 말이 회개하라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나서 귀신을 쫓아 주었고 병을 고쳐 주었다.

사도행전 2장 38
보면 초대교회 오순절날 성령이 임했을 때 베드로가 한 말이 무엇인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26장 20에서 회개를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요약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이것이 회개이다.

  [교회 통찰하기]
눈물 안 흘려도 좋습니다. 폼 안 잡아도 좋습니다. 열매만 있으면 됩니다. 변화만 받으면 됩니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온누리교회의 영적 대 부흥은 진정한 회개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교회가 이처럼 아름답다고 그래서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서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내 가정과 사회와 직장과 우리 교회에서 보여줄 때 이것이 영적 대부흥인 것입니다.
교인이 떠나도 괜찮습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교회가 지금 불이 붙고 있다고 그러지요. 부흥하신다지요. 예 부흥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부흥했습니까? 우리 교인의 반이 떠났습니다. 부흥입니다. 정말로 부흥입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싫은 소리를 듣는 사람인가? 

                     나는 회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회개가 좋을 게 뭐 있겠느냐는 생각에 회피하고 있는가? 
                     아니면 회개가 자존심 상하고. 나를 깨야 하는 것이지만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회개란 내가 잘 살던 스타일을 바꿔야 하는 것인데 기분 좋을 리 없지만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회개 없는 부흥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교회 통찰하기]
오늘 현대 성령주의에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입니까? 회개가 없다는 점입니다. 삶의 변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변하려면 길이 하나입니다. 사람 많이 모이는데 우리 교회 부흥의 비결이 있지 않습니다. 물론 많이 모이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회개 없는 모임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모임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진정한 부흥은 회개라는 것을 깨닫고 삶에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생활의 변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결단하고 있는가?
                     나는 제일 큰 죄는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한 죄요.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변화받지 못한 죄라는 것을 깨닫고 삶에 적용하고 있는가?

  [전환하기]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서) 두 번째 천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회개의 동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회개하라고 외치게 된 세례 요한의 메시지의 동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천국 때문이다.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천국 없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비유]
천국의 왕이신 예수께서 지금 여기에 등장하고 있다.
지금 곧 극장에 가면 말이지요. 연극 보면은 막이 오르고 연극이 시작하는 것처럼 이제 곧 땡하고 종치면 막이 오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은 이제 천국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바로 등장한다 말이지요.

[말씀관찰하기]
천국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런데 특별히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쓰는 것을 조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불경하게 느꼈기 때문에 그가 천국이라는 말을 주로 많이 쓰게 된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에서 이미 약속되었고 예언되었던 개념이다. 그래서 메시야가 약속되고 그리고 메시야가 예언된 것이다.
400년 동안 침묵 후에 거친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불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나타날 줄을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다.

  [거룩한 상상력]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구약이 말라기가 끝난 이후로부터 세례 요한의 출현까지가 400년 동안 이 400년 동안 가물어 메마른 땅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은 갈급하게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관찰하기]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혼돈과 사상의 혼돈과 종교적인 혼돈과 이단들의 나타남은 끝없이 방황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광야에서 불같은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너무도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었던 구약의 그 메시야가 지금 출현한다는 것이다.
이제 곧 막을 연다는 것이다. 그 천국이 지금 왔다고 하는 것이다.

  [거룩한 상상력]
그러니까 준비 안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쇼크겠어요.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이거 우리가 읽어서 그렇지요. 유대인들에게는 결정적인 충격입니다. 뭐 두 말할 것도 없어요.
예수님이 여기 오셨다면 우리가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요.
똑같은 얘기예요. 제가 좀 빠지고 여기 예수님이 딱 섰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충격을 받으실 거예요. 말도 못하지요.

[말씀관찰하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기막힌 충격이 무엇이냐 면은 천국이 왔다 라는 말이다. 그들은 기대할 수도 없었고 그 말을 믿을 수도 없었고 또 서로 왔다고 하더라도 수용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있는 그런 상태였다.
그래서 이런 충격적인 메시지 앞에 구름 떼처럼 사람들이 광야의 세례 요한에게 밀려간 것이다.

천국이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이다. 

 본문 깨닫기 : 
                     그러므로 천국은 어떤 장소라기 보다는 누가 통치하느냐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곧 천국이다. 예수님이 왔다는 말을 천국이 임했다는 말로 바로 직접 해석을 한 것이다. 

                     천국의 지배자요. 통치자이신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은 천지가 진동할 사건이다.
                     예수가 계신 곳이 천국이요. 예수가 지배하는 곳이 천국이요. 바로 예수님이 있는 곳이 천국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이미 천국은 내 안에 있음을 믿고 있는가?
                     나는 어느 날 나는 그 날에 천국에 가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는가?

                     나는 예수는 구약의 예언대로 세상에 메시야로 오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완성해 주셨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은 이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있는 것이 천국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천국은 이미 나에게 왔고, 내 마음 속에 천국은 이미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가?
                     나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나는 천국을 즐기고 있는가?
                     나는 매일 매일 천국을 살 수 있는 특권을 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구원을 노래하고 있는가?
                     나는 의롭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천국은 지금 나와 함께 거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가?

이것이 임마누엘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화라는 과정이다.
그리고 천국은 앞으로 완전히 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다시 오실 예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참된 성도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확실히 믿고,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천국을 소유한 자들의 삶임을 인식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전환하기]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의 사명과 그의 방법과 사역에 대해서 생각을 같이 또 해 보겠습니다. 그의 사명은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말씀관찰하기] :
누가복음 3장 5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더 첨가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은 낮아지고 굽은 것은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게 되어 질 것이요. 그때 모든 육체가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눅 3:5~6)

 본문 깨닫기 : 세례 요한의 사명은 간단하다. 주의 길을 예비하고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것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나
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교회 와서 내가 해야할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냥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아닌가?
                     나는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면 사명 받은 자가 아니라 구경온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설교 들으러 왔다 갔다 하는 사람아면 구경온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설교 들으러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아나라, 사명을 받은 자임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내가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누가 뭐라고 그러든 내가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하는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역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교회왔다 갔다 하는 사람되면 능력이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설교듣고 나의 사명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사역에는 먼저 교만한 마음을 꺾고 회개하여 겸손히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것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는가?

 본문 깨닫기 : 
[골짜기가 낮아진다라는 말은 골짜기가 돋아진다는 말은 낮은 자존감, 저는 그걸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골짜기가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내 안에 낮은 골짜기를 채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나는 네 속에 있는 열등감, 낮은 자존감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열등감, 낮은 자존감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본문 깨닫기 :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말은 (두 번째) 아직 주의 복음을 듣지 못한 공산권 모슬렘권 불교권 힌두교권에 주의 복음이 거침없이 
                     들어가도록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는 주님을 영접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넓은 의미에서는 주의 복음이 어디든 거침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선교하는 것이다. .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주의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의 선교를 누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전환하기]
우리는 공산권에 설교해야 합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주님이 기적을 일으켜서 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할 것입니다. 회교권에 우리는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불교권에 그리고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분을 지금까지 살려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4절에 나타난 것입니다.

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말씀관찰하기]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현대적으로 이것을 재해석하면 최고가품의 아주 평민들은 가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약대 털옷 이거 돈 많이 줘야 될 것입니다. 가죽띠. 메뚜기와 석청은 요즘 보약입니다. 이건 아무나 먹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겠습니까?

여러분 여기서 우선 비교를 하나 해야 할 것입니다. 약대털 옷, 가죽띠, 그 다음에 메뚜기와 석청 이것은 그 당시에 종교지도자들, 전문가들과 전혀 대조적인 의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옷, 서기관들의 옷, 제사장들의 그 화려한 가운, 그 모습과 이 모습이 굉장히 대조를 이룬다는 사실을 먼저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저택과 세례 요한이 살고 있는 집이 다르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깨닫기
: 단순성이다. 그 다음에 겸손이다. 그리고 솔직성이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그리스천의 삶이 단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특별히 사치품을 위해서 쓸 돈이 없어야 할 것을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필요한 것 외에 낭비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결단하고 있는가?
                     나는 그런 모든 돈과 시간은 선교와 봉사와 구제에 투자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전환하기]
 이제 마지막에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해서 생각을 하겠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본문 깨닫기 : 세례 요한의 설교가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이다. 

  [거룩한 상상력]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상한 의상을 입고 약대털 옷, 혁띠, 가죽 혁띠, 석청과 꿀을 먹는 그 사람, 아마 세수를 한 얼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은 아무튼 이상한 폼일 것입니다.
         
                     이상한 사람이 이런 설교를 했는데 문제는 그 설교가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이다.

  [본문 이해를 위한 질문]
그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뭘 받았습니까? 세례를 받았습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질문] : 
                     나는 
영적 부흥이란 숫자가 불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고 세례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는가?

  [교회 통찰하기]
오늘날 교회가 특별히 온누리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사회개혁입니까? 교육사업입니까? 정치참여입니까?
노사문제입니까? 선언문을 발표해야 하는 것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은 다 중요한 일입니다.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이차적인 것들입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중요하게 교회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가 잘 되면 나중에 이런 모든 것들은 다 잘 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회개하고 세례받는 일입니다.

  [결론]
그들이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고 죄를 자백하고 세례를 받았더라.
이것은 천지가 진동하는 사건이요. 영원히 거듭나고 마귀가 떠나가는 영적 대부흥입니다.

나는 오늘날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죄를 자백하고 세례받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그 다음에 우리의 삶에 기적들이 계속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 모두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저희들의 마음의 문을 열고 좀더 진지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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